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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 동안 매일 눈. 오늘은 모처럼 함박눈. 잔뜩 낀 안개에 주위가 안보이게 되는 것은 어쩐지 불길하지만, 빽빽히 쏟아지는 눈보라에 시계가 먹먹하게 가려지는 느낌은 좋다. 하염없이 눈 내리는 창 밖을 보고 있노라면, 긴 장화를 신고 무릎까지 푹푹 빠져드는 눈 속을 걸어 어느 평원 한 가운데로 가고 싶다. 눈 가운데 팔 다리 길게 뻗고 하늘을 올려다볼때면 그 청량감이란. (물론 내 경우엔 안경 위로 눈 쌓여가는 '더 뿌얘지는' 경험이긴 했으나) 사는거 별거 없는거다. 늙으니까 추울땐 집안이 좋고, 전기장판이니 난로니 군불때는 것들을 가까이하게 된다. 불편해서 생전 안입던 내복도 집 밖을 나설때 '아 추워' 나날이 계속되니 챙겨두게 되고, 마시는 음료도 커피니 홍차니 하는 것보다 인삼차나 생강차에 더 끌리게 된다고 할까. 세모는 분주해야 허무감도 있고 제맛인데, 야인으로 살아서 오라는 데는 적고 갈 곳은 더더욱 적고 그렇다. 서른을 넘어서니 교회나 성당 청년 모임은 창피해서 못나가겠고, 회사 파티는 지난 달에 해치웠으며 여자친구가 바쁜 관계로 올해는 한국에 가지 않기로 했으므로 올 연말 휴가는 집에서 가게나 도우면서 보내게 된다. 내가 한국도 안가고 휴가라니까 부모님은 놀러갈 일정을 잡아 놓으셨다. 그렇다고 해도 27일에는 사촌형이 온다고 하고, 이삼일 미국이나 놀러가자는 얘기가 있었으므로 신년은 보스톤이나 시카고 같은 곳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근 칠개월만이구나. 시간 참 쏜살같이 지나간다. 화살 지나간 청공에 자국 하나 남았는가. 여러분, 나는 잘 지내고 있고, 예전에 글쓰기에 쏟아붇던 시간과 열정을 이젠 게임을 만드는데 들이고 있으니 작가로 치자면 타락이지만 개인으로 보면 그런대로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장 대신 영상과 음악으로 꾸려가고 있으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세계를 창조하고 있으니 내 마음에게는 대동소이한 작업이지요. 그러나 작업 지시만 내리는 프로그래머/프로듀서가 되어 놨으니 혼자 책상에 앉아 실 뽑아내듯 단어 뽑아대던 시절에 비교하면 확실한 차이가 있습니다. 소설은 좋든 나쁘든 내가 신이었으나, 게임은 공동작업으로서 잘해봐야 풍랑 속의 선장이거나 혹은 불량 단원들과 함께하는 악단 지휘자의 느낌이려나, 합니다. 세어보면 이 업계에서도 5년째. 그러고보면 소설도 딱 5년 썼으므로 나에게 있어 어느 것이 본분이고 어느 것이 한눈팔이인지는 슬슬 역전되어야 하는지 모르나, 여전히 인생의 궤적을 따라가면 나는 다시 글쓰고 있겠지, 바라므로 이런 연말이 애틋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청년은 자신의 꿈에서 멀어져가는거겠죠. 10년만 지나면 '은퇴 후에는 취미 생활로 해야겠지' 하면서, 글쓰기는 향수에 불과하게 되어버릴지 누가 알겠습니까. 지금은 생업에 지치고 살짝 노는 것 만으로도 여력이 없는데, 아이 생기고 아이 키우다보면 손 닿는 거리에 있었던 것이 어느새 요원해지는겁니다. 머리 세어갈 무렵엔 두뇌도 시들어서, 창작이고 뭐고 상관없고 심심하면 티브이나 보고 있겠지, 생각하면 살짝 쓸쓸해집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레오나드 코헨을 들으면 눈물이 나오고 새벽 공기 석석한 겨울엔 음침한 시어의 부름을 받으므로- 그리운 장소가 고향이거니 떠나지 않으면 가질 수 없고 돌아와도 찾을 수 없다 하나 꽃다운 소녀 파파가 되어도 물 속에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마지막 한줄은 어떻게 끝낼까. 나는 미는가 두드리는가. 꽃다운 소녀 파파가 되어도 물 속에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옛 사람 정취는 거기 머무네 너무 식상한데... (꼭 마무리가 아니어도 나머지 모두 식상하긴 하지만) 꽃다운 소녀 파파가 되어도 물 속에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편편지지 안부를 묻는다 흠..... 꽃다운 소녀 파파가 되어도 물 속에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푸른 풀 기약언은 바래지않네 My iPod Playlist Rush of Blood to the Head - Coldplay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2번 - 런던 필하모닉 Final Fantasy 10 Piano Collection The Very Best of Stevie Wonder - CD 1 Fearless for You - Keri Noble Funeral - Arcade Fire The Greatest Hits 1962-1992 - Neil Diamond 보로딘 심포니 No. 1 - 토론토 필하모닉 바다가 들린다 OST 전부 앨범들. 화요일에는 만 서른 한 살이 되었다.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할 정도로 시시한 날이었지만 (자정이 지나 생일이 끝나고서야 퇴근했으니. 도대체 화요일의 생일이란 뭐람) 나이를 또 한살 먹은 것이 무언가 좋은 일의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 하지만 생일이라고 산 복권은 꽝이었고 생일을 전후해서 여자친구와는 전쟁의 연장전 중인데다가, 도무지 그 암울한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타협할 수 있는 문제로 다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덮어버릴 수도 없고, 아무튼 도대체 뭘 어쩌자구. 끝없이 지쳐가는 와중, 차라리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도망가고 싶다'. 긴 휴가를 떠나고 싶다.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책 한권을 읽은게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한 번 사는 인생.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다면 안타깝지 않은가. 무언가 파격적인 일탈을 꿈꾸지만 이것저것에 얽매이다보니 '현실적으로' 어디를 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놈의 돈이 뭐고 집이 뭔지.
여자는 불가사의.
평생을 걸려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여자는 감정적'이라고 세간에서 말하는데, 이성이란 그 감정들의 축이나 토대나 심지어는 묶는 끈 조차도 아니고, 그냥 그들을 설명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 아닐까. 뭐, '여자는...' 이라고는 도무지 말할 수 없을만큼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지만 말이지. 아무 생각없이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나같은 존재는 언제나 무언가 잔뜩, 총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배려하며 살기가 힘들다. 컴퓨터 용어로 설명하면 '램'도 '하드드라이브'도 작아서, 도저히 작업불가.
지금은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으므로, 나는 많이 자유롭다.
종교의 가치관으로부터, 천국과 지옥으로부터 자유롭다. 선하고 착한이들과 함께 영원히 안락하게 지낸다는 천국은 예쁜 여자 일곱과 방탕하게 살 수 있다는 코란의 천국과 마찬가지로 엉뚱하고 많이 지루해보이고, 영원히 속죄하며 불탄다는 개념은, 원념을 품고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될 정도로 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자신에게 떳떳하게, 공동체에 보탬이 되고 스스로 행복하면 되는거 아닌가. 인간이 기본적으로 선한지, 악한지의 문제는 사실 '선한 부분도 있고 악한 부분도 있겠지'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선악을 결정하는 구분자체가 자의적인 것으로 본다. 물론 선악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은 있는데, '좋다' '싫다' 두 감정의 질량배합인 그들은 그 Context에 의해서만 판별될 수 있다. 어떤 일들은 개인의 범주에서, 다른 일들은 그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의 범주에서. 이를테면 내가 스타벅스에서 종이컵에 든 커피를 사왔다고 하자. 커피 자체가 몸에 좋은지 나쁜지는 의학계가 명확하지 않지만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잔뜩 넣었기 때문에 내 몸에 나쁜 식품이 되었고 내 개인에게 그것은 악이다. 내가 건강을 망쳐 일찍 죽으면 가족들은 마음을 아파할테니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있어 그것은 역시 악이다. 한편 내가 결혼했다면 보험금이 들어올지 모르니 부인과 자식들에게 반드시 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돈을 내고 커피와 설탕과 프림을 소비했으므로 도시, 지방, 국가, 세계 경제에 있어 그것은 선이다. 커피컵을 만드는데 소모된 자연, 커피를 마신 결과를 처리하는데 소모된 에너지를 생각하면 인류 공동체에 있어 그것은 악이다. 하나라도 인간이 빨리 죽어 없어진다고 하면 지구 생명 공동체에 있어 그것은 선이다. 내가 태어나고 죽어도 전체 질량은 불변할 것이므로 우주 공동체에 있어서 그것은 선도 악도 아니다. 얘기하다 보니 전혀 좋은 예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선'이란 자신이나 공동체에게 좋은 일을 했느냐, '악'이란 그 반대로 좋지 않은 일을 했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관점이 어느정도 '이기적'이 아니라면 선악은 구별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사소해지지만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면 더 큰 것을 볼 수 없게 된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아마도 국민학교 4학년 때. 흑석동 중앙 대학교 담장 옆에 살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당시엔 요즘처럼 대학과 주위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고, 언덕을 약간 올라가서 나무 틈을 지나기만 하면 대학 교정이었다. 반면 작년에 가보았을때는 집은 그대로 있었으나 대학과의 경계에는 높이가 5미터는 될만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시멘트 벽이 생겨있었다. 또한 대학이 크게 확장해서 예전에 정문이 있었던 장소는 그냥 학교 안이 되었는데, 수능도 없었던 그 시절, 시험 날에는 정문 기둥이나 철문에 엄청난 양의 엿이 붙어있어 한밤중에 그거 떼먹고 다녔던 사악한 기억이 난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시. 대학교 안에는 민주화 어쩌고 하는 대자보가 즐비하고, 심심찮게 데모가 일어나 동네가 최루탄 매케한 냄새에 휩싸이기도 했다. 우리집에서 흑석 국민학교까지는 대학을 가로질러 빨리 뛰면 10분만에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늦잠꾸러기인 나는 학교를 빙둘러 가는 '보통' 등교길을 가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언젠가 그런 지름길을 왜 언제나 나 혼자 다녔지? 질문하자 당시 함께 살던 이모가 '얘, 얼마나 이상한 애들이 많았는데 여자애들(사촌동생들)을 그리 보내니' 말씀하셨다. 당시에도 변태나 성범죄자들이 있고 대학 주위엔 호르몬 들끓는 삐뚫어진 젊은이들이 많았을텐데(사촌동생들은 어렸을때 꽤 귀여웠다) 아마 나혼자 태평스럽게 학교안을 헤집고 다녔나보다. 응? 그러고보니 내가 4학년이었다는 건 걔네들이 각각 2학년과 1학년이었다는 얘긴데 너무 어리지. 아무튼 '영생'이라는 개념을 접한 것은 4학년때 동네 애들 따라간 대학교내 교회에서였다. 안경을 쓴 어린이반 선생님이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이셨겠지) 나를 예뻐해줘서 그 기쁨에 매주 어린이반 예배에 나갔다. 그저 놀러 다닌 것 뿐이었는데 간식과 숨바꼭질 사이에 신앙의 전도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 가르침은 예수 안 믿으면 죽어서 지옥가고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죽으면 모든게 끝난다. 죽고 싶냐? 살고 싶지. 살려면 이리 해라. 지옥은 무서운 곳이란다. 도대체 이 어린애의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삶에 대한 열망이 나를 휘어잡았다. 갓 열살이 되었는데 내 나이에 10이 들어간다는게 종말의 예고처럼 느껴졌다. 일 더하기 일은 이, 라고 생각했더니 열살에 열살 스무 살이 되고, (아! 늙어빠진 스무살 아저씨!) 곧이어 마흔살, 여든살, 아아, 인간은 백년도 못산단 말인가. 시간이 너무 지나치게 빠르구나.
양배추 스프의 나날.
재료가 완전히 똑같아도 조미료를 넣느냐 넣지 않느냐에 따라 맛은 천양지차라는 것을 알게됐다. 고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마지막으로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산 것이 언제더라. 물론 간간히 외식으로 동물성 단백질은 충분히 섭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건물 위를 지나가는 기러기 한쌍을 보니 계절이 바뀌는 모양이다. 한국은 3월에 눈이 왔다는데 이곳은 훈훈하고 지난 주 이후로는 눈도 다 녹아버렸다. 캐나다는 1948년 이후로 가장 따뜻했던 겨울이라고 한다. 대부분 이런 겨울이 좋았다고 하지만- 그러나 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뭔가 허전한 계절이었다. 편의점에서 호빵을 샀는데 앙꼬가 손톱만큼 밖에 안들어있었다는 느낌. '그럴 수도 있지' 체념하면서도 '이건 좀 아니잖아' 눈쌀 찌푸린다. 봄에는 만 서른 한 살이 되고. 사람의 일생으로 누구나 책 한권은 쓸 수 있다고 한다. 나 자신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歷史)들이 각자의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발자국 만들며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그런 감각을 좋아한다. 이 세계는, 그런 무게들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그런 생각이 들때면 문득 마음 한편이 간절해진다. 창밖의 시시한 풍경이 누군가 애절하게 사랑했던 어떤 이야기의 장면들은 아닐까.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다 헤어지고, 운명처럼 재회했으나 숙명처럼 가로질러간 바로 그 지점은 아닐까. 그렇다면 '난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하고 있다' 아쉬움과 토로가, 마치 전설처럼 그곳에 서려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의 골목길, 어떤 언덕, 건물의 옥상마다 교정의 나무들마다, 커피숍 칸막이 뒤에 폐기된 승용차의 조수석에, 전철역의 시계 밑에 교차로의 건널목에, 상처입은 마음들의 파편들이 무수하게 떨어져 있을 것이다. 아픔이 욱하니 터져올라, 혹은 자기도 모르게 흘러버린 눈물에 담긴 것들은 물과 함께 증발해서 어떻게 되었을까. 하늘로 떠올라 어딘가 먼 곳으로 날아간걸까, 바닥으로 침잠해 조용히 흩어져버렸을까. 아니면 그 때 그 장소에 이제는 낡아버린 모습으로 아직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줄무늬 고양이를 볼때마다 멈춰서서 손짓으로 고양이를 부르는 한 신사가 있었다. 이웃의 어린 꼬마가 고양이를 부르는 신사의 모습을 보고 신사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그렇게 해서는 고양이가 오지 않아요. 몸을 작게 낮추고 목소리를 듣기 좋게 경계심을 없에게 하고 불러야죠.' 신사는 '고맙구나 얘야' 대답했다. 하지만 신사는 그 뒤로도 꼬마의 충고를 따르지 않은채 고양이들에게 손짓 할 뿐이었고 꼬마는 그런 신사를 답답하게 생각했지만 더이상 참견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꼬마는 청년이 되고 신사는 노신사가 되었다. 더 많은 세월이 흘러 노신사는 죽고 청년은 신사가 되었다. 혹은 전쟁이나 질병, 사고로 인해 신사는 노신사가 되었으나 꼬마는 청년도 신사도 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어느날 한 줄무늬 고양이가 점박 고양이에게 말했다. "불리운다는 것은 말이지." 신기하게도, 여자친구와 별일없이 잘 있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공덕은 나에 대해 많은 것들을 체념한 여자친구에게 있으며, 나 자신은 별로 변한게 없는 듯. 포스팅이 완전히 없어지게 된 것은 '에헴' 내 사업이 본 궤도에 들어가기 위한 수정 과정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선 우주로 위성을 보내야 하는 계획을 위한 회의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시작해야만 했던 시기와 겹치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온 창의력을 그쪽에 쏟다보니 '내가 소설을 쓰던 시기가 있었던가' 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인터넷에서 J.D. 살린져의 사망기사를 읽었고- 오랜만에 옛날 소설들, 완성작과 미완성작들을 뒤적여봤는데 -_- '어라, 잘 썼던 것 같네'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완벽한 문장을 갈구하며 한없는 불만에 허덕이던 내 예술적 감각도 무뎌져 사라졌나보다. 그리고 한편 내가 지금 잃어버린 것들을 옛날 소설들이 간직하고 있으니, 그것은 기쁘면서도 부끄러운 조우. 10년 전에는 내가 잘나갈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럭저럭 한심하게 안주하게 된 내가, 옛날의 동창생을 만나서 '야, 예전에 너 꿈이 컸었지?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는 눈치없는 질문을 받은 기분이랄까. 어른이라면 이럴때 상황을 파악하고 '좋은게 좋은거야' 하면서 술잔 한잔 기울이고 끝냈으련만, 10년전의 나는 순진하고 순전하고... 끝없이 오만하고 잘나서... 꼴보기가 싫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냐. "커뮤니케이션, 진실한 대화란 두 사람의 내면적 교류다. 그것은 상대에게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며 또 상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의 문을 여는 행위다. 대화에서 그것은 진실로 이야기하는 일이며 주의깊게 듣는 일이다. 이러한 대화는 한 사람이 언어로 상대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가닿는 것을 바라고 의지할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진실한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생각한 결과가 '아마도 있기는 있겠지' 였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나마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자신이 없다. 최근 일주일, 한달 동안 그런 일이 없었다는게 아니라, 일년 삼년, 심지어는 거의 10년전 대학교 2학년때 이후 기억의 서랍장을 뒤져봐도 '나는 오늘 진실한 대화를 했어, 후후후'라는 기억이 없는 것이다. '혹시 정말 한번도 없었던 건 아니야?' 라는 두려운 가능성이 스멀스멀, 증거불충분으로 사실이 되어버리는 위험에 처해있다. 물론 한번도 없었다는건 사실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설마 한번도 없지는 않지 않을까? 내가 친구가 많은 사교성 인간은 아니지만 속세를 등지고 사는 은둔자도 아니므로- 그렇게 말하고 보니 속세를 등졌다고 친구도 없으리란 법은 없다- 그들과 그동안 뭔가 의사소통을 하며 지내지 않았을까? 마음을 열고, 진심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꺼내어 놓는 묵직하고 훈훈한 대화를 서로 나누지 않았을까? 그냥 내가 당시에 눈치를 못챘거나 기억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이너하게 초조한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녀석이 대뜸 대답했다. "아마 없을거야. 네가 좀 재수없는 성격이잖아. 사람 힘들때 정론을 들이대며- 아 그 정론- 충고나 하고, 고집은 세서 뭐 좀 틀어지면 금방 넌 그래라 난 이럴께, 그런 식이고." 야, 너 나한테 쌓인게 많았구나. 미안하게스리. "사람이 좀 만만해야 가깝게 느껴지는 법이야. 좀 허술하고 빈틈이 있고, 문제도 있고 고민도 있어야 '햐, 너도 그렇구나, 실은 나도 그런데' 하면서 친해지는거 아니야? 근데 너는 지나치게 방어적인 데다가... (한동안 어쩌구저쩌구. 콧털 좀 깎으라는 얘기도 했다) 암튼 짜증나." "비난의 홍수구나, 홍수. 아무리 내가 마음껏 하라 그랬다 그래도 그렇지." "몸에 좋은 말이 입에 쓴 거라며." "야, 입가심하게 칭찬 하나 해주고 끝내." "......" 이제와 깨닿는 것이지만 내가 근래 진실한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말로' 누군가와 가까워지기를 강렬히 바라고 의지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솔직하고 언제나 진실해왔다. 단지 말이 아니라 쓰는 글에서. 게다가 진실한 대화라면 끝나고 난 뒤에 뿌듯하고 온몸이 희열에 젖는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초등학생, 중학생때 무슨 일이 있은 후 친구와 급속도로 가까워질때나, 여자친구를 처음 만나 새벽 네시까지 이런 저런 얘기로 전화통을 붙들고 있다가 잠이 들때의 그 만족감처럼. 진실한 대화란 새사람을 아끼고 친해지게 될때 세상이 넓어지는 그런 기분을 수반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인간관계가 담담하게 현상을 유지하는 지금은 아닌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그 어떤 것도 새로 만드는 것 보다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에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법이고 소중한 관계일수록 늘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관심을 쏟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인간이 못되서 그런지 사람의 뜻은 안 보이고 자꾸 말의 잘잘못만 따지게 된다. 나 좀 사랑해달라고 가까이 온 사람들이 내 그런 태도에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눈물 흘리고 했을까.
어제 크리스가 휴가를 언제 쓸거냐고 묻길래 아무때나 좋다고 대답했더니 느닷없이 다음 주에 쉬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휴가는 4일 남았는데 다음주 금요일이 휴일이므로 묶어서 일주일 쉬는게 좋지 않느냐는 것.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목요일에 휴가 상담해서 월요일부터 휴가라면 나는 어쩌라구! 아무 계획도 없고 이제와서 여행 패키지 따위를 알아보기에도 늦었다. 이번 달에는 돈도 없고 어딜 관광하기에는 모호한 계절이라(단풍은 지고 눈은 안 오고). 그냥 각종 개인 프로젝트에 투자하자, 마음먹고 준비 중. 진짜 오랜만에 메트로 토론토 도서관에 가서 작업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도서관 근처의 핫도그 먹어본지도 몇년이나 지났고. 아무 마이크로 필름이나 꺼내서 오래전 신문 기사를 읽어보는 짓을 한 것도 사오년은 옛날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쉬어야지. 사실 달력을 열어볼때까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지난 일기 이후의 사건들을 종합해보자면- 14일 토요일 - (칼의 생일) 금요일, 회사에서 철야 후 회사에서 아침 일곱시 쯤 선잠. 아홉시 쯤 일어나 딜러쉽에 정기점검으로 차를 맡기러 감. 차가 고쳐지길 기다리는 사이에 던다스의 가게에서 이발. 한시쯤 차를 픽업해서 (400불이 넘게 나왔다!) 다시 회사로. 두시 반에는 성당 미팅을 위해 성당으로. 여섯시쯤 성당 미팅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귀환. 아홉시까지 일하다가 데릭의 파티에 놀러감. 게임만 줄창 하다가 아침 여섯시에 귀가. 15일 일요일 - 저녁 여섯시에 기상. 좀 어이없어하다가 일곱시에 농구. 아홉시 반쯤 농구를 끝내고 또 다시 회사로. 아침 일곱시에 귀가. 16일 월요일 - 정오 출근. 자정 귀가. 17일 화요일 - 열한시 출근. 열한시 귀가. 그리고 수요일 아침인 지금, 서브미션 미니멈까지 딱! 한개의 전화기가 남아있다. 나 좀 살려줘... 13일의 금요일. 데릭의 생일. 아홉시쯤에는 데릭과 함께 사무실 건물 길건너 펄킨스에서 저녁식사를 겸해 축하의 맥주 한 잔. 생일파티는 내일 걔네집에서 식사+게임+포커 콤보로 개최될 예정이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 주말마다 친구들이 우글우글 몰려오니 원. 어제는 새벽 세시 퇴근. 오늘은 (현재 새벽 두시) 몇시에나 퇴근할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밤을 새는 쪽을 택할지도 모르는데, 내일 아침 아홉시 반에 차를 정비소에 맡기기로 예약했기 때문. 게다가 아무래도 내일은 휴일 출근해야하고, 오후 세시에는 초이스 월모임 준비 미팅이 있는가하면, 머리도 깎고 싶고 데릭의 생일 파티에도 놀러가야 한다. 이게 뭐야. 어제는 빼빼로 데이~ 그동안 한국에서는 수능이 있었다고 하고, 이젠 내 띠동갑들이 대학생- 이런 생각을 하면 하나도 좋을 일이 없으므로 스톱. 그만 두도록 하자. 이제 얼마남지 않은 새해에는 내 나이도 서른 둘. 10월 지난 달에는 부모님이 한달 일정으로 한국 방문을 하셨고 덕분에 주말마다 부모님집에 내려가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모가 도와주시니 부모님이 여행도 하시고 그러시는거지. 토요일 아침에 서두르다가 키치너에서 과속 딱지를 떼는 바람에 케임브릿지에 있는 법정에 재판 신청을 하러 가야 하기도 했다. 일단 재판에 앞서 검사를 만나 벌금/벌점을 조정해보는 날은 12월 18일. 지난주에는 요즘 유행하는 독감에 걸려 고생 좀 했고, 아직도 기침을 하고 있지만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때는 컨디션이 좋았다. 일찍 일어나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면서 결국 아침 열한시까지 퍼질러 자 버리긴 했지만... (난 요즘 열한시에 일어나 열한시 반까지 출근하고 있다. 진짜 이러고 싶지 않은데) 내 반성을 촉구하는 칼의 이메일을 읽고 정말 일기를 꼬박꼬박 써 버릇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일기를 쓰지 않으니까 삶을 더 대충 살게 되는 것 같아서, 그래도 매일매일 일기를 쓰면 '일기거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더 성실하게 살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또한 자책도 하고 반성도 하는 동안 다시 영감을 찾는 노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하긴 일기 열심히 쓰겠다는 결심은 남들이 금연 결심하듯이 워낙 자주 하고 워낙 자주 엎어져서 아예 결심을 안하는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일기를 거의 안쓰게 된 것에는 직장을 제외한 내 삶이 여자친구님의 삶에 곂치게 되고, 그녀는 자기 얘기가 공개일기에 적히는 것을 질색하니 (또 내 일기의 톤 자체가 부정적이기도 하고) 그리된 바가 있는데, 이것은 정말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 요즘은 힘든 일이 많다보니 거기에 신경을 쓰다보면 나도 일기 쓸 경황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궁시렁 궁시렁 거렸다가 그녀가 읽어보고 나한테 난처한 상황이 여름날 뭉개구름처럼 피어나는 사태가 두렵기도 하고. 그러나 하루에 한 문장, 한 단락만 쓰겠다는 생각으로 부담없이. '퀴즈노 서브는 맛은 좋은데 기름져서 먹은 후에 늘 죄책감이 든다.'
초이스 모임에서 늘 읽는 에세이, 쓸 사람을 미리 정해두자고 한 것이 석달 전이던가. 월모임 봉사자가 여섯명이고 한번에 두명씩 에세이를 쓰게 되니까 순서를 아무리 미루어 봤자 석달 후에는 자기 차례가 걸리게 되어 있는 셈인데, 그렇다면 성실한 인간이 되어 일찍 자원하고, 매도 먼저 맞는 느낌으로 미리 에세이를 쓰고 읽는 것이 정답, 훌륭한 처신이겠지만, 어느덧 석달 후, 지금 내가 여기 쭈그리고 앉아 이 에세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때, 인생이란 무엇인가, 게으름이란 무엇인가를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
아무튼 8과의 주제는 '무엇이 내가 속하는 것을 방해하는가'이고, 9과의 주제는 '누가 나한테 속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인데, 느닷없이 10과의 주제는 미래의 삶에 대한 계획이 무어냐는 것이었다. 'What are your plans for the future?' 과의 주제만 듣고 내가 말했다. "I think I'm a wrong person to write about that." "Why?" 헬렌이 물었다. "I'm thirty years old. I have nothing to say. Young people have future. I don't have a future. All my big dreams and the big future already didn't come true. What I have is a gradual decline from now on." "That's not true. You will find a good girl, get married, get a nice home, start a family..." "You see, they all sound like the END of the future to me." "Well, maybe you coud write that." So here I go, as promised. 물론 석달 후의 재난은 이렇게 그 씨앗이 심어진 셈이지만, 나로서는 미리 에세이를 써서 봉사자들간에 먼저 읽어보고 피드백을 받아 수정해보자는 방책 자체가 지난번에 내가 썼던 무지막지하게 길고 재미없었던 글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사실 그것은 내가 모임 전날 밤 휘갈겨 쓰지 않고 시간을 두고 좀 더 다듬어 보기만 했어도 훨씬 더 재미있을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뭐, 그랬다면 가뜩이나 긴 이야기가 더 길어지기만 했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사실 나는 초이스에서 요구하는 '자신의 경험이 담긴, 짧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쓸 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 내가 삼십세이고, 오븐 속에서 너무 오래 구워진 닭고기처럼 바짝 메말라 딱딱해져 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초이스의 여러 주제들을 몇번이나 다시 만나는 동안 첫 감동의 신선함은 사라지고, 좋은 충고가 조금은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단계에 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심이 아닌 것은, 나에겐 정말 쓰기 힘들다. 물론 초이스의 정신, 속함의 정신을 실천하며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잔소리 운운하는 것은 되먹지 못한 소리다. 수녀님에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 (한편 시스터 리타는 이제 곧 떠나신다. God bless her) 뭐, 나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니까, 흐린 날이나 어두운 방에서나, 아주 먼 곳에서 보면 핸섬할 수도 있고, 가끔 짧게 짧게 얘기를 해보거나 같이 영화를 보러 간다면 착한 것 같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쿨 한 남자니까, 어떤 불편한 주제로 에세이를 써야 하더라도 지나치게 멍청이처럼 보이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 실제로 10과의 내용을 읽어보면 제목에서 말하는 '미래'란, 커리어나 직업이라든가, 스물 다섯살까지 백만장자가 된다거나 백마탄 왕자님을 만나서 팔자가 편다든가 하는 그런 미래가 아니라, Vocation, 즉 교회 안에서 자신의 '소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초이스에서 다뤄온 개인과 개인 사이의 속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초이스는 소명이란 교회 안에서, 교회의, 교회를 위한, 교회에 의한, 서로 속하라는 부름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성직자가 되어 신도들 모두에게 속하게 되는 길일 수도 있고, 부부 사이에 서로를 통해, 서로와 함께 보다 큰 카톨릭 가족에 속하게 되는 길일 수도 있다. 함께 소개되는 성서의 말씀은 Luke 19장. 어떤 사람이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하인들 각각에게 재산 일부의 관리를 맡겼는데, 한 사람은 맡겨진 액수를 두배로 불리고, 또 한 사람은 절반을 불려서 각각 칭찬을 듣는데, 맡겨진 재산을 잃는 것이 두려워 손수건에 싸서 땅에 묻어두었던 사람은 꾸중을 듣고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예수님의 우화다. 즉, 우리에겐 하느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두배로 세배로 부풀려야 하는 (미리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책임이 있으며, 그것이 곧 우리의 소명인 것이다, 라고 해석해본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며 맡겨진 것들은 교회와, 교회의 사람들이 아니던가. 최소한 예수님이 돌아가실때 제자들에게 돈으로 유산을 남겼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근데 참고로 금화, 탈렌트라는 것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1탈렌트는 60미나. 1미나는 100드라크마라니까 1탈렌트는 6000드라크마가 되는 셈이다. 드라크마의 가치는 시대마다 판이하게 다르지만 고대 그리스 시민병의 일당이 반 드라크마였다니까 6000 드라크마는 400명의 시민병을 한달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액수다. 좀 더 알기 쉽게 비교하자면 반 드라크마는 가족 세명이 하루 식사를 할 수 있는 액수, 1드라크마는 고급 기술자의 하루 일당이라는데, 지금 돈으로 40달러라고 치면 금화 하나가 (좀 어이없지만) 24만 달러란 셈. 그 반절도 안되는 10만 달러라고 계산해도, 그걸 잃는게 무서워서 손수건에 쌓아서 땅에 묻어뒀다는 행위는 투자라는 시점에서 좀 용서가 안되는 일이긴 하다. 은행이 없는 시대라고 해도 그걸로 부동산이라도 사 두라구. 한심한 종이여. 내가 성서의 그 우화를 처음 읽었을때 '금화 하나 밖에 안주구선 뭘 기대했담' 생각했기 때문에 해본 조사다. 우리는 오늘 Vocation-소명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는데, 워낙 글을 쓸때면 투덜거리게 되는 내 잡설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자신이 교회와 교회의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머리를 모아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싶다. 사실 나의 첫 감상은 '내가 신부님 될 일은 없을테니까 성당 사람과 결혼만 하면 챕터 클리어인가' 였지만 농담은 접어두고, 성당에 속하게 된 이후, 만나게 된 사람들과 그들이 내게 보여준 친절과 호의를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신부님들 수녀님들,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동년배들. 더 어린 사람들. 저기 해성이라든가. 비교를 하자면 뒤늦게 영화가 상영 중인 캄캄한 극장에 들어갔는데 미소가 아름다운 얼굴로 옆자리를 비워주고 귀찮아하는 기색도 없이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고 편하게 보라고 방석이랑 배개도 건내주고 춥지 말라고 담요를 덮어주는가 하면 '입이 심심할테니까' 하면서 땅콩, 팝콘에다가 초콜렛 쿠키까지 건내주는 수준... 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러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든 자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먹은 후에 도망가는 먹튀가 아니라 먹은 만큼, 받은 만큼 또 베풀어 이 좋은 공기를 전파하고 유지시켜 나가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소명이 아닐까. 이번 토요일에는 퀘벡으로 발령받아 토론토를 떠나는 리타 수녀님을 위한 Gala가 어딘가의 홀까지 대여해서 열린다. 지난달에는 초이스 그룹에서 같은 이유로 수녀님을 위한 깜짝 파티를 주최했었기 때문에 나 자신은 연회까지 참석할 생각이 없었는데, 일요일에 아서가 전화를 해서 '200명을 위한 홀인데 지금 100명 밖에 없다!'고 부탁하길래 비싼 돈 내고 코스 요리를 먹는 셈치고, '의리상' 가보기로 했다. 리타 수녀님이 성당 청년들에게 각별한 이유는 그녀가 벌써 15년 동안 성당의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즉, 내 나이 또래, 30대 초반의 장년들에게는 고등학생때부터 현재까지 정신적 지주가 되어온 셈이다. 화끈하고 직선적인 성격, 바르고 아픈 말을 아끼지 않지만 힘든 일, 고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 같은 애정으로 보듬고 위로해 주시는, 엄하면서도 자상한 이모를 연상케하는 그 성격에, 무서워 하는 사람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물론 그거야 리타 수녀님과 함께 자라온 사람들 얘기고 고작 2년전에 성당에 들어간 내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나 역시 카타키즘 교육을 수녀님에게 받아서 반년간 매주 얼굴을 봤다든가, (그걸 하도 많이 빼먹어서 세례 받게 해달라고 여자친구가 간절히 부탁해야 했다던가) 초이스 미팅 때문에 한달에 한 번은 인사를 드린다던가 하는 인연이 있으니까 아주 남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단지 연회에 갈 생각이 없었던 것은 그 자리에 리타 수녀님을 아는 모두가 초대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고등부'가 주축이 될 것은 명역관화하고, 새파란 고등학생 남녀들이 재롱을 펼치는 잔치자리는 내 취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생 녀석들도 꼬마 풋내기로 보이는데 하물며 고등학생들이라니. 아무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가서 예산의 구멍을 막아야 하니깐, 아서의 부탁에 응락을 했는데 '설마 이거 포멀(턱시도급)은 아니지?' 물었더니 '물론 아니야.' 아서가 대답했다. '그냥 세미 포멀(정장급)'. 아이구. 보통 여자들이 여자의 이유로 자주 하는 말과는 다르게 내가 '입고 갈 옷이 없는데'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입고 갈 옷이 없다는 뜻이다. 정말로, 정말로 없는 것이다. 학생때 맞춘 양복이나 졸업할때 맞춘 양복들은 내가 20킬로나 살을 뺀 바람에 완전히 입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내 직업이 게임 프로그래머이다보니 지난 5년 동안 양복을 구비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갖고 있는 건 중고로 산 검은색 블레이져 하나. 양복 바지도 없다. 가끔 경조사가 있으면 동생 것을 빌려 입는데 동생은 나보다 10센티가 넘게 키가 크고, 친척의 결혼식 같이 둘 다 갖춰입어야 한다면 나는 할 수 없이 옛날 고등학생때 교복 바지를 꺼내 입거나 하며 변통해오고 있었다. 그건 좀 많이 비참하니까 그렇잖아도 한 세트 있어야겠지, 상하의 조끼 한벌에 100불(10만원) 방출한다는 International Clothing 신문 광고를 보면서 '그냥 싸구려 기성복을 해둘까. 아니면 맞춤복으로 갈까' 저울질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양복 입을 일이 금방 생겨버렸다. 그래서 어제 월요일에는 한번 살펴나 볼까, 하고 퇴근하는 길에 있는 중고의류가게에 들렸는데, 대부분 나한테 크거나 어깨가 맞으면 팔이 짧다거나 했으나 사이즈로는 꼭 맞는게 하나 있었다. 가격은 고작 7불(7000원). 문제는 이것이 상아색이었다는 것. 이걸 상아색이라고 할지 밝은 회색이라고 할지 아무튼. 마음에 들었지만 이런 색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나머지 옷들을- 셔츠, 넥타이와 바지- 입어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물론 티셔츠와 청바지에는 잘 어울렸지만 요는 당장 토요일에 어떻게 써먹는가. 동생은 세로 줄무늬가 들어간 하얀 셔츠에 엷은 갈색 조끼를 껴입고, 바지는 블레이져보다 약간 짙은 색으로 하라고 조언했는데, 나와 동생은 옷걸이가 다르니까 녀석에게 어울리는건 대개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더만. 사실 나는 이번 기회에 한번 튀어볼까나, 하고 핑크색 셔츠를 입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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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는 성공에 필요한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 내 16만 명의 교도소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그들의 92%는 자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행한 처지가 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불행은 자제력 부족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으로 칭송되는 몇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그들은 틀림없이 뛰어난 자제력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불멸의 영웅 링컨의 성격을 보면 그는 가장 큰 시련의 시기가 닥칠 때마다 인내와 평정과 자제력으로 일관하였다. 그를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은 바로 이런 성품들 때문이다. 한번은 링컨이 그의 내각에 불충한 장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불충한 성격이 자신 때문이라는 이유와 또 그 장관의 다른 자질은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링컨은 자제력을 발휘하여 그 장관의 불충한 행위를 못 본 체 넘어갔다. 이것에 버금가는 자제력을 지닌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자제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부족한 사람에게 재앙이 닥치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에 필요한 다른 자질을 잃기 때문이다. 결국 자제력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자신에게도 해를 미친다는 것이다. 시카고에 있는 한 백화점의 소비자 불만처리 창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람들이 담당자인 젊은 여성에게 자신의 불만과 백화점의 잘못에 대해 항의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마구 화를 내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해댔고, 어떤사람은 폭력적인 언사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젊은 여성은 싫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고객들의 항의를 들어주고 있었다. 그녀는 항의하는 고객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불만의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너무도 우아하고 평정을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녀의 뒤에는 또 다른 젊은 여성이 서서 항의자들의‘신랄한 욕설’과 분노의 표현을 제외한 항의 사실만을 조그마한 종이쪽지에 기입하고 있었다. 항의자의 항의 소동이 끝나면, 그녀는 그 종이쪽지를 창구에 앉아 있는 그 젊은 여성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창구에 앉아서 항의를 들어주고 있는 여성은 다름 아닌 말소리를 전혀 못 알아듣는 청각 장애를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자리를 채울 만한 충분한 자제력을 갖춘 사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정신적인 귀마개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을때는 이 정신적인 귀마개를 사용하는 것이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다고 해서 매번 분노하고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고 또 해야 할 건설적인 일들이 너무나 많다. 최고가 되려면 자제하라. 스스로를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은 어느 직장에 있든 그 직장의 주인이 될 것이다. 법정에서‘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모른다’는 상투적인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하는 사람에게 변호사들이 가끔 사용하는 아주 현명한 속임수가 있다. 증인을 화나게 만드는 것이다. 화난 상태에서 증인은 자제력을 잃고 냉정한 정신 상태였다면 결코 말하지 않았을 사실을 그만 내뱉고 마는 것이다. 데이콤의 김만조 이사는 거래처의 간부와 통신 시스템에 대한 협상을 하고 있었다. 까다로운 간부는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김 이사는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다. 그런데도 계속 물어보면서 때로는 말도 되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화가 나기도 했지만 김 이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답변해 주었다. 이런 식으로 협상은 몇 주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거래선 간부가 이따금 되지 않는 소리를 하고 시비를 걸면서 협상을 질질 끄는 것이었다. 그날따라 기분이 언짢았던 김 이사는 화가 나서 그만 큰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거래 안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왜 이렇게 일일이 시비를 겁니까?”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날 이후 협상은 결렬되었다. 자그마치 32억원짜리 거래가 한순간의 큰소리 때문에 날아간 것이다. 오내균 사장은 슬픔에 잠겼다. 1년 여 병원 생활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장례를 치르고 내려오는데 너무나 슬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스물여덟 살 막내동생이 철이 없어서 그런지 친구와 어울려 노느라고 어머니한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었다. 오 사장은 화가 나서 동생에게 한마디 했다. “넌 언제 정신 차릴래. 정신 좀 차려라. 어머니를 잘 돌봐 드려야지.” 동생을 혼낸 후 오 사장은 먼저 집으로 왔다. 며칠이 지난 후 동생이 내려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동생이 홧김에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그만 저 세상으로 간 것이었다. 오 사장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조금만 참았으면 되었는데, 조금만…….’ 자제력을 갖춘 사람들의 특징은 자제력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여 증오, 질투, 시기, 두려움, 원한 등의 파괴적인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다. 또 잘 흥분하지 않으며, 어떤 사물이나 인간에 대해 무절제하게 열광하지도 않는다. 정확한 자기 분석과 능력 평가를 넘어서는 탐욕과 이기심과 자만심은 자제력의 결여가 초래할 수 있는 가장 위험스런 형태다. 자신감이 성공에는 필수요건이지만 합리적인 선을 넘어선 자신감은 아주 위험할 수 있다. 자제력의 결여란, 사실을 파악하기도 전에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사실 혹은 합리적인 가정에 근거하지 않고 판단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를 잘 반성해 보면, 실질적인 사실보다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욕구를 근거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심각한 양상은‘낭비하는’습관이다. 물론 여기서는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는 과소비의 습관을 의미한다. 얼마 전에 6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어느 중견 회사의 사장은 직원 상당수가 카드 빚을 지고 있음을 알아내고는 그 악폐를 근절시키기 위해 진상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조사 결과 직원 중 9%만이 적금 계좌를 보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91%는 이런 저런 형태의 빚을 지고 있었으며, 구제 불능의 상태에 몰려 있는 직원도 적잖이 있었다. 그런데 빚을 지고 있는 사람 가운데 210명이 자기용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적은 돈이라도 저축을 하고 있으면 많은 기회를 얻게 된다. 저축하는 돈의 많고 적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저축하는 습관이다. 그런 습관은 자제력이라는 중요한 성품을 지닌 징표가 되기 때문이다. 버는 돈은 모두 다 쌓아두고 손에는 장갑 대신 헌 양말을 끼고 있는 구두쇠와, 버는 돈을 다 써버리고도 모자라 빚까지 지는 사람의 사이에는‘행복한 중간’이 있다. 평균적인 자유와 만족을 확신하며 인생을 즐기려면 그 중간 지점을 찾아서 당신의 자제력을 길러 나가야 한다. 극기 훈련은 개인의 성품을 개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버는 것보다 많이 소비하려는 취향이나 성향을 억제할 수 있으며, 또한 참지 못하고 앙갚음하는 습관이나 비생산적인 방법으로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운 수많은 나쁜 습관들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마음에 불붙은 석탄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그것은 계속 연기를 내며 점점 열기를 더해 갈 뿐이다. 월리엄 제임스는“우리들 인간은 여러 가지 감정을 의지대로 억누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관해서는 의지의 힘으로 컨트롤할 수 있고, 우리가 스스로 일정한 행동을 취할 때 감정도 그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당신이 만일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다면 행복한 행동을 취해야 하며, 자신이 성공한다고 느끼고 싶다면 성공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인생, 그것은 행동과 반응의 실험실이다. 당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감정은 결국 당신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응이다. 당신을 가장 괴롭히고 있는 사람을 도와주어라. 이렇게 하면 오랜 상처는 치료되고 감춰져 있던 분노는 완전히 사라진다. 원수를 사랑하면 당신은 그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을 때 배려를 보이고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면 인간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반응을 보인다. 때론 그 같은 처우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지 당황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것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 산보를 해도 좋고, 쇼핑하거나 기도하거나 또는 혼자 트럼프에 흥미를 느끼는 것도 좋다. 그것은 당신의 기호에 따라 마음속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자신을 위로하고, 타오르는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그 행동을 계속하다 조금 시간을 두고 당신을 괴롭히는 상황에 논리적으로 대처하라
어젯밤에는 영화 Knowing과 여고괴담 5를 보았는데, 둘 다 봐줄만 했다... 는 아니고, Knowing은 X-file 에피소드를 보는 느낌으로 꽤 재미있었고, 여고괴담은 조금씩 스킵해가면서 무서운 장면과 스토리만 대충 따라간 셈이다. 고등학교를 무대로 여자애들끼리 지지리 볶는데 내가 무슨 공감을 하겠나. 그냥 '원령이란 무서운게지' 하면서 땅콩 까먹는 것이었다. 애들이 줄줄이 죽는데 이 학교는 계속 수업진도 나가고, 경찰 하나 안 보이고 선생 캐릭터도 없고 '최소한 줄초상이 나는 학교는 야간폐쇄해야 하는거 아냐?' 생각을 하니까 어느새 리얼리즘은 옆 동네로. 단지 귀신 여자애가 튀어나올때의 영상은 꿈에 나올까 무섭기는 하더라.
여름, 언제 여름이기는 했나. 토론토는 하루 걸러 비 내리는 선선한 날씨. 올해들어 덥다고 느낀 날은 한손으로 꼽을 정도고, 그나마 아침저녁으로 쓸쓸하니까 회사에서 늦게 퇴근하는 나로서는 더위를 느낄 새도 없다. 매주 포개져오는 마감에 쫓기고 오늘은 금요일이지만 집에 갈 수는 있을런지. 금요일 오후로 접어들자 창밖으로 보이는 고속도로에는 확연히 교통량이 불어나있고, 그네들 대부분 여름, 주말을 맞아 뭔가 즐거운 일을 하러 가는거라고 생각하니 사무실 붙박이 내 신세와 비교되기는 한다. 아무튼 꿈과 희망을 가져야지. 지금 흘리는 땀이 나중에는 열배 스무배로 가치있어지고, 늙으막 '나는 뭐하고 살았나' 후회를 지워주렸다. 한편 이렇게 살다간 과로사인데, 내게 늙으막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CBC 라디오의 음악/예술 프로그램, Q에서 어떤 오스트레일리아 가수의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지금 Q의 진행자인 지온 고메시가 휴가중인 관계로 지난 일년간 흥미로웠던 프로그램들의 재방송을 보내주고 있는데, 요즘 내가 라디오를 듣는 시간은 출퇴근길의 10분이 고작이기 때문에 거두절미, 가수의 이름도, 노래도 듣지 못했고, 새 앨범 제목이 The Dark Shade of Blue라고 했던가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이 가수는 부인이 캐나다 사람이고 캐나다와 연관이 많다는데, 지난 겨울 캐나다 투어 중에는 약물중독자 버스 운전기사를 만나 생명의 위협을 넘기기도 했다는 (토론토에서 썬더베이를 가던 중에 정신나간 운전사가 고속도로에서 반대방향 차선으로 주행을 했다나) 이야기를 했고, 그런 긴 투어가 끝나고 호주의 집으로 돌아간 여름, 가족들과 함께 느긋한 시간을 보내며 새 앨범을 준비하게 된 사연을 말했다. 호주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했던 음반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런 말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여름은, 습도가 달라요. 이 기타, 내 악기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나무로 만들어졌거든요. 이것들이, 그 공기와 함께, 훨씬, 훨씬 풍부한 소리를 내죠." 갑자기 내 눈 앞에 온통 키 큰 녹색의 나무숲과, 푸른 하늘, 가슴까지 올라오는 수풀, 그리고 그 사이에 퍼져가는 '풍부한' 음악이 펼쳐졌다. 사실 나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오스트리아로 듣고 있었기 때문에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연주했던 빈의 여름이란 악기의 소리마저 증폭시키는거 였던가! 잠깐 흥분했지만, 나중에 들으니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였기 때문에 살짝 실망하기는 했다. 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어떤 곳에서 만들어진 악기와 어떤 곳의 공기가 공명, 하는 것. 홀로 우뚝 서기는 쉬워도 낮추어 굽히기는 어렵습니다. 뜻이 있어도 세상이 그 뜻을 받아드리지 않을 때 그 좌절의 역경 앞에서 묵묵히 자신을 가르며 기다릴 일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한 생각에 달려있고 넓고 좁은 것은 한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마음이 한가로우면 하루가 천년보더 더 길고 뜻이 넓은 사람은 좁은 방도 하늘과 땅 사이 만큼 넓습니다. 벼도 익어야 고개가 숙여지고, 물이 깊어야 고요한 법입니다. 빈 깡통이 요란하고 빈 수레가 시끄럽습니다. 패자는 말이 많지만, 승자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말이 많은 사람은 변명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여유 있는 사람은 그것이 재주이든, 돈이든, 능력이든 내 세우지 않습니다. 커다란 재주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재주를 의식조차 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조그만한 잔재주를 드러냅니다. 큰 재주는 가만히 있어도 그 후광이 빛을 내뿜기 때문이고, 잔 재주는 소리를 질러야 남들이 알까말까 하기 때문입니다. 대인관계에 있어 외부적인 현상들을 보면 상대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자연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사기꾼의 특징은, 말이 많고 아는 게 많아 보이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빈 깡통의 요란한 소리뿐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문분야의 진실한 엔지니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복입니다 - 채근담 - 시간을 물처럼, 공기처럼 낭비하고 있다. 하루의 일과는 출근 -> 열한시에서 새벽 네시 사이에 퇴근 -> 귀가 -> 잠 -> 출근, 이라는 것으로 도대체 일 외에 무엇을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주말에는 모자란 잠을 퍼질러 자고 운동 좀 하고 집 앞뒤의 정원을 관리하는 것으로 끝나있고, 마찬가지로 무엇을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이게 도대체 뭐하자는 인생이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일이야 어쨌든 정시퇴근하고 내 삶을 살아야 하는데 바보처럼 책임감만 강해서 하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고 집에 가자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육체의 한계까지 소진하고 '이젠 도저히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때,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서는 느낌. 나름대로, 일중독자라는 범주에서, 보람은 있지만 (업무에 한정해서, 잠들기 직전에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자족감이 있다) 인생을 보다 더 크게 생각할때 (내 경우 주로 월급명세서를 들여다보거나 통장 잔고를 확인해볼때 그런 생각을 할때가 많다) 정말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자고 나의 생명 에너지, 수명을 교환하고 있다는 암울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최근에는 내집마련을 꿈꾸며 갖가지 정보를 알아보고 거래하는 은행에 전화를 해서 얼마나 빌릴 수 있는지 Preapproval(사전승낙?)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따져볼수록 암담한 일이다. 은행에서는 약 19만불(1억 9천 정도)을 5년 고정 연이율 4%, 35년 상환을 조건으로 빌려주겠다고 하는데 우선 그 돈으로 살 수 있는것은 다운타운의 10평 미만 스튜디오나 1베드룸 Co-op, 전철역에서도 먼 1, 2베드룸 콘도 뿐이고, 내가 갖고 싶은 시내/역세권/16평 이상/1침실 콘도를 얻기에도 부족한 액수다. 물론 교외 한적한 지역에는 3베드룸을 8만불이면 살 수도 있지만 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도 없는 그런 동네에는 절대 살고 싶지 않고- 둘째로는 그 20만불을 35년은 집어 치우고 25년 동안 갚는다고 가정할때 이자로만 지불하는 총액이 10만불 정도고, 토론토 부동산 시장에서 콘도에 그 정도 가치상승은 기대할 수 없으므로 결국 손해인데다가, 콘도 관리비와 세금이라는 '그냥 뿌리는' 지출을 감안하고, 빚을 갚는 동안 다달히 허덕거릴 가계를 생각하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건 아니올시다'라는 결론 밖에는 안나오는 것이다. 즉, 몰기지 + 관리비 + 세금을 다 합쳐서 한달에 내 월수입 절반 수준이고 빚을 더 빨리 갚아나갈 수 있다면 '해볼만하다' 하겠지만, 그런 조건을 충족시키자면 빌리는 액수는 10만불 이내가 되어야 한다. 10년만에 갚으면 이자 총액은 원금의 20% 안팍으로 묶을 수 있다. 캐나다 부동산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하자면, 한국의 전세제도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고 결국 소유나 월세냐 두가지로 나뉘는데, 거주형태는 크게 단독주택, 콘도미니엄/타운하우스, Co-op 아파트먼트로 나뉠 수 있다. 단독주택은 그야말로 부지에 집이 따로 하나 있는 것이고, 면적에 비해 년간 거주세가 높게 매겨지는 편이다. 콘도미니엄은 한국으로 치면 아파트로 건물에서 한 호를 소유하는 셈이다. 타운 하우스는 주택이지만 소유권은 콘도미니엄스럽다. 주로 매달 콘도 코퍼레이션에 관리비를 내고 대신 거주세는 살짝 낮게 책정된다. (그래봤자 관리비와 세금을 합치면 단독주택 세금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Co-op 아파트먼트는 뉴욕에서 비롯된 제도인데 건물의 한 호를 소유하는게 아니라 건물 전체의 몇 퍼센트를,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구입하는 것이다. 즉 건물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건물을 소유하는 것으로, 콘도와 마찬가지로 매달 관리비를 내게 되지만 콘도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는 곳이 자기 것이라고 할 수가 없으므로 구입/판매/인테리어/서브렛 등등이 모두 Co-op Board의 승인을 필요로 하며 건물내 법령이 따로 있어서 흡연이니 애완동물이니 금지된 장소가 많다. 아무튼 가진 돈이 없으니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도 없다. 사실 나야 도심에선 멀어도 전철역만 가까우면 오케이지만 결혼해서 살 생각하면 도심에서 가까운 걸 따지지 않을 수 없고. 과연 난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한동안 포스팅이 전혀 없었는데, 이유는 내 블로그에서 로그인/새글쓰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글루 서버 교체중인가' 처음에는 이글루 웹사이트 자체가 열리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글루 사이트가 되길래 로그인을 하고서도 새글을 쓸 수 없어서 오랫동안 괴이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민번인증 문제인가, 생각도 해봤지만 지난번에 그래서 내 운전면허증 사진을 보낸 적도 있어서. 결론만 얘기하자면 로그인은 이글루 메인에서, 새글쓰기는 내 이글루 메뉴가 아닌 맨 윗편의 헤더메뉴(로그인을 해야만 보인다)에서만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게 웬... 멍청한 노릇이람. 이 정도도 발견하지 못한 내가 어이없는건지(열심히 찾아보았다면 그러한 내역의 공지라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커다란 변화에 대해 사용자에게 알림 메일 하나 보내주지 않은 서비스에 문제가 있는건지... (그러나 그런 메일을 보냈는데 내가 스팸으로 지워버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무튼 4월 27일이 내 생일이었고 나는 만으로 서른살이 되었다. 생일이 월요일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티클라이막틱한 엔딩이랄까. 뭔가 해야지, 마음먹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분주하게 돌아다닌 것은 그 전의 주말로, 정작 월요일이 되자 이젠 별다른 감흥도 들지 않았다. 토요일에는 성당 관계로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마셨고, 일요일에는 오랜만에 토론토 다운타운으로 가서 책방/헌책방 워킹투어를 돌았다. 차를 산 이후로 몇년만인가, 전철을 타니까 역마다 자동으로 안내 메세지가 흘러나왔고(불과 2년전까지만 해도 차장이 마이크로폰에 대고 안내해줬다) 이튼센터 맞은편, Sam the Recordman이 있던 자리는 이제 건물이 헐리고 라이어슨 대학교 Student Learning Centre가 된다는 공고가 칸막을 타고 써붙어있었다. (Sam 음반점의 멸망은 오래전 소설 '흔적'에서 다룬 적 있다) 생일 당일에는 회사에 갔다가 퇴근하는 길에 운동 하러간게 전부. 하긴, 자정 이후라서 더이상 '내 생일'은 아니었지만 사촌동생과 나이아가라 카지노에 놀러가기는 했다. 예산이 적어서 테이블 게임(카드나 룰렛)은 무리였고 슬롯머신을 돌았는데, 최종결과는 56달러 75센트 수익. 한때 사촌동생과 함께 120달러까지 땄었지만 역시 카지노란게 시간이 갈 수록 잃게 되어 있더라. 일요일에는, '아... 오늘이 내 이십대의 마지막 날이구나'라고 되뇌이며 잠시 우울증에 빠져들기도 했지만(잠자는 동생을 붙잡고 '으허헝, 형아가 내일이면 서른이야!' 푸념하고 있었다), 그런 고뇌조차 시간이 지나자 무시무시한 망각력 가운데 침식되어버리고, 딱히 부인하는 것도 완전히 수긍하는 것도 아닌채 서른은 도착해서 어깨를 두드리고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마치 길다란 샌드위치의 중간 부분처럼 어디서 어떻게 무슨 맛이었는지는 도무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변화는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는데, 생일 다음날인 28일에는 회사 사무실이 벌링턴에서 토론토로, 우리집에서 가까운 장소로 이전했다. (덕분에 화요일이 휴일이 되어 한밤중에 카지노 나들이도 갔다) 새 사무실은 고속도로 곁에있는 11층짜리 쌍둥이 빌딩의 동쪽 건물, 8층으로, 한쪽 벽 전체가 창문으로 되어있어 경치도 좋고 채광도 좋은 위치였다. 내 자리에 앉아서 오른쪽을 보면 창문인데, 하루종일 교통량 많은 고속도로와, 그 건너편에 있는 lavalife.com 빌딩이 보였다. CN타워도 볼 수 있으면 좋았을 테지만 쌍둥이 빌딩의 나머지 반쪽이 그 방향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침에 오다보니 10분이 조금 더 걸렸는데, 6킬로미터, 이것 참 살기 좋아졌구나, 느낌이 팍팍 들었다. 주차장도 건물 지하에 있고 엘리베이터를 보니 운동시설도 건물내에 있던데 미시사가에 있는 짐을 등록한걸 조금 후회했다(뭐, 지지고 볶아도 회원권은 내년 3월까지다).
해피로그 .
토론토 크레이그 리스트에서 어딘가 농구팀이 없나, 액티비티 포스팅을 보던 도중 이런 제목이 눈에 띄었다. Something Happy(제목) - Everywhere(지역) 짧막하게 간추리자면 게시자가 학교 프로젝트를 위해 블로그를 하나 개설했는데, 모두가 그곳에 와서 이번주에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했는지, 적어보자는 것이었다. 주소는 여기. (http://something-happy.blogspot.com/2009/03/post-something-that-made-you-happy-this.html#comments) 한번 가보았더니 첫 댓글은 3월 25일에 시작되어 4월 2일 현재까지 92개의 코멘트가 있었다. 엔트리 중에는 '집에 갔더니 새끼 고양이가 자기가 개인줄 알고 배를 스다듬어 달라고 엎어지더라. 그래서 스다듬어 줬어' 라든가, '길에서 두 노인이 아이스크림 콘을 먹고 있는 것을 봤다' 라든가, '남자친구가 초콜릿 쿠키를 만들어줬어!' 처럼 일상적이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줄줄이 엮여 있었다. 길에서 만난 강아지에게 말을 걸었더니 엄청나게 반가워했다. 나도 강아지가 갖고 싶네, 하는 내용을 읽었을때는 갑자기 내 가슴이 뭉클, 해졌다. 바로 얼마전까지만해도 나한테도 내가 부르면 온 힘을 다해 달려오는 강아지가 있었는데. 나를 보면 껑충껑충 뛰면서 안기거나 늘 내 옆에 있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실은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그랬지만, 4년이나 함께 산 그런 강아지를 어머니가 '털이 너무 날려서 안되겠다'라며 (고양이와 더불어) 동네 사람에게 줘버렸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불과 이주전이었다. 난 정말, '동물을 집에 들일때는 평생 함께해야지' 말하고 싶었지만, 결정은 물론 매일 그네들 먹이를 주고 대소변 치워주던 어머니 것이니까. 아무튼 이번주, 나에게 무슨 행복한 일이 있었나 기억의 서랍장을 뒤적거려보는데 이렇다 할만한게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를 다녀와서 운동을 하고 한두권의 책을 읽었더랬지. 하지만 많이 기뻤다거나, '아 좋다' 혼자서 슬그머니 웃었다거나 하는 기억은 없었다. 나야 기억력이 짧으니 몇달전 몇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그 자체로 어렵고, 행복했던 기억을 찾기 위해 그만큼 수고 해야 한다는 자체가 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슈퍼마켓에서 '라이프' 시리얼이 세일 중이어서 몇년만에 한 박스 사봤는데 과연 최고였다, 라든가 (보통은 보다 영양가가 있거나 가격이 싼 시리얼로 선택한다) 헬스장에서 4마일을 쉬지 않고 뛸 수 있었다, 같은 일들은 미각을 만족시키거나 모종의 성취감을 주긴 했어도 그닥 행복으로 연결된거 같지 않았다. 실은 그런 일들에도 행복해할 수 있었을텐데. 나에게 있었던 시시한 일들이 시시해지는 것은 내가 그들을 소중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가에 떨어진 돌덩이조차 주워들어 관찰하면 세월의 의미를 가르쳐줄 수 있을텐데, 모든 일들을 설렁설렁 흘려보내버리니까 흐리멍텅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석양 가운데 들려오는 산사의 종소리를, 원형으로 퍼져가는 진리의 파동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딘가에서 시간을 알리는 소리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누가 되고 싶은가. 참맛은 되새김질에 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에. '나는 그런대로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못하다. 가만히 앉아있을때마다 온갖 종류의 아쉬움이 수면 위로 거품처럼 떠오르기 때문이다. 슬펐던 장면, 괴로웠던 장면, 즐겁고 신이 났던 장면, 냄새와 목소리, 주위의 불분명한 배경들, 사소하고 익숙한 표정 따위가, 마음 한편 작은 창에 틀어놓은 영화처럼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왜 그때 그러지 못했을까' '왜 좀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요즘의 나는 그런 너무나 많은 미안함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예전 아르바이트 하던 가게의 매니져 아저씨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함께 가게 앞에서 눈을 치우고 담배를 피우며 "그게 누구던 있을때 잘해라' 말해줬던 충고, 당시에는 '이 사람, 이런 생각하면서 사는구나' 정도로 흘려들었던 충고가 지금은 마치 심장 옆에 박혀있는 비수처럼 덜컹거릴때마다 온 몸에 충격과 고통을 퍼뜨린다. 그게 누구던 있을때 잘하라구. 내가 고집을 부리며 자꾸 그녀를 방치한 끝에, 지쳐버린 그녀가 이젠 나를 놓아버렸던 결말이라 더욱 쓸쓸하다. 난 내가 그녀에게 그녀가 원하는 삶과 행복을 주지 못할거라고 단정했고, 그렇다면 (합리적으로) 더 나은 사람, 훌륭한 사람, 다른 남자를 만나보라는 얘기를 귀가 닳도록 했다. 그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하건 그건 정말 지치는 일이었으리라. 자신을 끊임없이 놓아보내는 사람, 놓아보낼 준비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란 어떤 의미로 지독한 폭력이다. 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 앞에서 더이상 마음을 놓을 수 없고 제멋대로 기대지 못한다. 용기도 믿음도 주지 않는다. 마지막 무렵에는 지독하게 외로워하는 그녀,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다고 울부짖는 그녀에게 제대로된 위로도 해주지 못했다. 외로움이란 당연한거니까 괜찮다는 얘기, 어쩔 수 없으니까 기운을 내자는 얘기만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헛소리들이었다. 따뜻하게 이해해주고 보듬어주지는 못할 망정 화가 나면 화를 내고 무자비하게 전화를 끊었다. 끝도 없을 것 같이 오랫동안 계속되는 괴로움 속에서 나도 지쳤지만 그래도 나빴다고 생각한다. 화를 내는 이유는 상황을 낫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짜증이었다. 사람이 힘들어하는데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가식적인 입발림 뿐이라고 느껴지면 너무나 화가 났다. 생각해보면,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보다 그저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치졸한 비겁함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내 예상 이하로 형편없는 사람인 셈이다. 모든 시간, 모든 경험, 모든 기억, 모든 감정들이 전 애인, 전 남자친구, 전 여자친구, 전 지인의 '전'자에 모두 묻혀버린다고 생각하면 허무하고 쓸쓸한 일이다. 어떤 교차로에서 '아- 그 사람' 잠깐 쉬었다가 '예전에 알던 사람이었어' 웃으며 얼버무리고 지나쳐버리는. 서로가 반대 방향의 군중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그러한 결말. 나 라면 뒤돌아볼까. 그녀라면 뒤돌아봐줄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그 손을 붙잡아 줄 수 있을까. 시간의 격류 속에서, 그때 만난 우리들은 얼마나 또 변해있을까. 내일은 어머니와 지민군의 생일.
원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5868.html
최우성 이세영 기자, 로버트 브레너 교수, 정성진 교수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나’라는 물음에 답해 줄 네번째 목소리의 주인공은 로버트 브레너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다. 브레너 교수는 세계 역사학계에서 언제나 논쟁을 몰고 다니는 대표적인 맑스주의 역사학자이자, 이른바 ‘거품경제론’(버블노믹스)을 무기로 현대자본주의에 날선 비판을 해온 지식인이다. 브레너 교수와의 대담은 지난해 12월22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의 한 호텔에서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진행했다. 이 대담에서 브레너 교수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뿌리는 산업자본의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떨어진 데 있다는 논지를 폈다. ‘금융위기’의 본질은 ‘금융’이 아니라 ‘실물’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지는 내용
==========================한국인에게 질문. 표현의 자유에 대해==========================
'최근, 한국에서는 미네르바의 체포나 싸이 바 모욕죄의 성립을 목표로 하거나 국가 정보원법, 통신 비밀 보호법등의 개정을 향하는 등 이명박 정권하에서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의 탄압이 진행되고 있고 문제가 되어 있다고 (들)물었습니다. http://www.korea-htr.com/minjoksibo/board/board.cgi?id=news&action=view&gul=303&page=2&go_cnt=8 물론 정말로 표현의 자유에 대하는 탄압이 행해진다면 한국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바탕으로 항의가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한국인에 여기서 질문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정부등이 표현의 자유를 규제한다고 떠듭니다만, 한국은 열매 꼭지 리어 소동이나 일본의 교과서, 일본의 만화에 대한 항의등 가끔 일본의 표현의 자유를 탄압할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열매 꼭지 리어 소동은 만화에 있어서의 표현의 규제이고, 일본의 교과서 문제도 일본 정부가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게 일본의 일서적회사등이 만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침해입니다. 또 사상이 잘못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교·사상의 자유의 탄압입니다.그것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 허위의 유포에 임해 항의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미네르바 때와 같이 일의 봐를 탄압한 한국 정부의 행동과 같습니다. 일본인의 내가 이것을 지적하는 것은 내정의 간섭이라고 말한다면 한국인이 행하고 있는 일본인에 대한 행동도 맞읍니다. 이와 같이 한국이 항의하는 자유의 문제는 일본에 대해서 한국이 행하고 있는 행동과 대조하고 생각하면 많은 모순이 생겨 버립니다. 한국 분은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가르쳐 주세요.' 북한에서 미사일 실험을 하면 일본정부가 항의합니다. 반응이 격렬하다면 그만큼 위협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래 역사에 일본으로부터 세번 침략당하고 한번은 식민지까지 된 나라에서 일본문제에 민감하지 말라면 그것도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일일 것 같습니다. 미네르바 문제는 지금 정부의 법 악용이고, 일본만화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것에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내용을 모르는 상황에서)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의 압력입니까, 아니면 자체검열이었습니까? 표현의 자유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이기를 바라며 명예훼손죄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일본인도 해외문화에서 자신들이 비하되는 경우에 (혹은 그렇게 느껴진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겠죠. 그러나 큰 원칙으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고, 작은 일에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는 것은 도량이 작다고 하겠습니다. 질문 말미에 '한국인은 이런 모순을 어떻게 해결합니까?'라고 하면 모순이 있다고 presupposing 하는 것입니다. 모순이 없다는게 아니라, 속마음으로 단정짓고 논의를 시작하는 태도가 교활하군요. ==========================왜 한국의 wiki만 다른 나라의 것과 내용이 다릅니까========================== '일본에 도착해를 각국의 wikipedia로 읽으면, 한국만 타국과 내용이 크게 다르군요. 역사에 관해서는 한국만 매우 짧고 마이너스 이미지가 강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전후의 성장에 대해서는, 영문판에서도 독자적인 힘으로 경이적으로 성장했다고 쓰고 있는데 왜일까 한국만은 미국의 원조와 한국 전쟁의 덕분에 성장했다고 써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매우 칭찬해 뜯고 있는 내용이 많아, 정보량도 대단히 많습니다만, 한국만은, 특히 일본의 역사나 외교에 관해서 숩포리와 누락이라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어째서 한국만 내용이 외와 다른 것입니까?' 위키는 유저가 작성하는 것입니다. 한국 위키에 반일본 정서가 포함되어도 그럴법합니다. 그러나 Encyclopedia Britanica에서도, 일본의 경제부흥이 한국전쟁이라는 호재로 시작되었다는 점이 잘 적혀있습니다. 'red_step: >위키는 유저가 작성합니다. 한국 위키에 반일본정서가 포함되어도 그래그래입니다. 심한 착각 www' 일본어 번역이 '그래그래'입니까? 원문은 It's likely라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 '韓国の歴史教科書の抜粋を翻訳したのが、HP上にありました。 内容は、合っているのでしょうか? 文化の伝播と交易 三国時代には、文物交流ど交易が活発になった。三国は大陸から中国文化を受け入れて、独自の文化をつくりあげ、発達した三国文化を日本へ伝えて日本の古代文化の発達に大きな影響を与えた。 百済は日本と政治的に緊密な関係を維持したので、三国中、日本文化に一番大きな影響を与えた。近肖古王のとき、阿直岐と王仁は日本にわたり、漢文・論語・千字文を伝えてあげ、武寧王の時には段陽爾と高安茂などが、漢学と儒学を教えてあげ、日本に政治思想と忠孝思想を普及させてあげた。つづいて、聖王の時には仏教を伝えてあげ、そのほかに天文・地理・暦法などの科学技術も伝えてあげた。 高句麗も、たくさんの文化を日本に伝えてあげた。高句麗の僧侶慧慈は聖徳太子の師であり、曇徴は紙、墨、硯をつくる技術を教えてあげ、法隆寺の金堂壁画も彼の作品として知られている。高松古墳の壁画は、高句麗の影響を受けたものである。 新羅は船をつくる技術、ならびに堤防と城郭を築く技術を、伽耶は土器を作る技術を日本に伝えてあげた。 このように三国は発達した文化を日本に伝えてあげ、日本の古代の飛鳥文化を生み出すうえで大きく貢献した。' 고대문화의 전파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스승이다' '에헴'하는 것도 우습지만, 위에 565656처럼 참고문헌이나 자료 운운하는 것도 우습군요. 마치 논문을 쓰기 위해서 참고자료는 필요없고 전부 새로 실험해야만 가치가 있다는 뜻인가. 그러나 대상이 고문이어서야 직접 마이크로 필름으로 읽어봤자 윤색에 유권해석이 뻔할텐데 말이죠. 남이 준비한 자료를 정년퇴직자의 취미로 깎아내릴 겨를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 한탄만 할께 아니라 가지고 있는 더 정확한 자료로 가르쳐주시는게 건설적일겁니다. 저는 역사에는 별 지식이 없지만, 7세기에 쇼토쿠 태자가 중국으로 직접 문화를 배우러 유학생을 보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그 전까지는 전해지는 문화가 한국산이었다고 추측됩니다만. 'afmstmsem: 수와 당에서는, 불교와 경전등이 일본에 들어 왔습니다.한편,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들어 온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한 살도 모릅니다.' 불교문화야 인도에서 중국과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갔겠죠. 불상 같은걸 보면 백제식이 도입되었을듯 합니다. 출토되는 토기로 미루어? 일본의 벼농사법이 아마 한국에서 전해졌을거라고 하던데 -_- 그거야말로 잘 모르겠고, 사실 이 논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자동차나 트랜지스터는 미국에서 발명되었지만 일본제품이 세계정상이 됐죠. 만약 한국 자동차가 일본 자동차를 모방했는데 '이건 미국산 발명품'이라 우기면 좀 기분나쁘지 않습니까. 아무튼 천년도 넘는 옛날에 우리가 뭘 전해줬다고 으스댈이유는 전혀없고, 교통도 불편한 그 옛날, 문화가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는 그 아름다움만 음미해봅시다. 'miciell: 한자와 유학에 대해서는 중국으로부터가 아니었던가? 성왕은 일본에서 말할 곳의 「성명왕」이군요. 일본의 교과서에도 「성명왕」에 의해서, 경전이나 불상이 보내져 일본에도 불교 전래되었던 것이 써 있었습니다.(내가 고교시절이므로 2002년 시점입니다만) 종이와 먹에 관해서도 조선 전래이라고 배운 것 같은······? 그 이외는, 자신 없습니다·······. 어쨌건 간에, 일본인은 도래인에 의해서 많은 기술이나 문화가 초래된 것은 사실이군요. 도래인의 분들에게 감사하는 겸허한 마음을 일본인은 조금 생각해 내서는 안될까요···? 우리 자신도 도래인의 피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joonchee씨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자주(잘) 비교되는군요. 일본의 역사의 자료집에 반드시 실려 있었습니다. (쿠다라)백제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일본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라고 하는 두 개의 불상의 사진을 늘어놓을 수 있는 (쿠다라)백제의 불상의 영향을 일본이 크게 받고 있으면 공부했습니다. 일본인은, 역사에 약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특히 여성) 고구려나 (쿠다라)백제라고 하는 나라로부터 다양한 문화가 전래해 온 것을 모르는 사람이 안에 들어가는 것 같고 놀랐습니다. 일본의 중학이나 고등학교에서는 반드시 공부하고 있을 것입니다. 일본의 교과서에는 그 근처가 쓰지 않지 않을까?등과 한국 분들에는 부디 오해가 없게 부탁 말씀드립니다.' 'afmstmsem: 신라와 (쿠다라)백제는 야마토의 세력권이었기 때문에 문화적인 교류가 당연 있다.단지, 한국에서는 그 벡터가 일방적인 응이지요.' 등등등. 이하는 작성은 했지만 포스트하지는 않았음. 한국이 일본을 깔보는 것은 유교문화를 통해 중화사상에 편입된 소중화 사상의 결과로, 일본이란 변경의 후진 나라인데 (중국에 가까울수록 좋은 나라임) 실제로는 그런 변경국에게 많이 당했기 때문에 자존심까지 상해서 역사책을 읽으면 반감이 생기게 만들어져 있어요. 특히 80년대에 교육받은 저는 일본의 식민지 시절 군국주의에 희생당한 한국인들의 일화들, 강제징용된 위안부나 일본경찰에게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읽고 배우면서 자라나 일본의 제국주의에는 트라우마가 생겨났을 정도입니다. 또한 민족국가라는 동질성 가운데 내 민족의 고통은 나 자신이나 부모형제 친척의, 가까운 아픔으로 느껴지게 되는겁니다. 국가를 사람으로 은유하자면 의외로 많은 것들이 납득이 가는데, 예를 들어 당신을 십수년에 걸쳐 엄청나게 괴로운 상황으로 밀어넣은 왕따의 주모자가, 시간이 지나서 봤더니 돈도 많이 벌고 부자로 잘 살고 있는겁니다. 과거에 저지른 죄는 마치 잊었다는 얼굴을 하고. 돈이 많아서 세력도 셉니다. 동네의 대장과도 친하게 지냅니다. 당신을 고립시켜 린치한 주제에, 그래도 내가 있어서 네가 사람이 됐다, 너희 집 옆의 조그만 땅덩이, 내거 아니냐 같은 얄미운 소리를 합니다. 전에 괴롭혔던 것은 이미 보상을 했다고 하는데, '삽십년 전에 돈봉투 줬으니까 그걸로 끝'이라고 하면 마음이 달래질 것 같습니까? 피해자가 바라는 건 가해자가 좀 뉘우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일 겁니다. 사실 전후에 태어난 현재의 일본인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는 그다지 없겠지만 (없기를 바랍니다) 개념으로서의 일본 자체는 기분나쁜거죠. 물론 저도 이제 늙어서 사상도 자립합니다만, 역시 이 역사로 꼬인 매듭을 푸는 것은 대화와 교류, 이해를 통해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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